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메르 제국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802년]]부터 [[1431년]]까지 629년 동안 [[캄보디아]]에 존재한 [[제국]].[* 802년에 [[자야바르만 2세]]가 '''데바라자''' 의식을 치르며 제국이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며, 1431년에 수도인 [[앙코르]]가 [[아유타야 왕국]]에게 함락되면서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본다.] 사실상 '''캄보디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'''를 이끌었던 대제국으로 한때는 대륙부 동남아시아 대부분과 심지어는 중국 남부 지방까지 직•간접적으로 지배했다. 북쪽으로는 중국의 [[윈난성]], 서쪽으로는 [[미얀마]], 동쪽으로는 [[베트남]]까지 닿았으며, 국력이 정점에 달했던 [[자야바르만 7세]] 시대에는 영토가 최대에 이르렀다. 현대인들에게는 캄보디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[[앙코르와트]]를 건축한 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. 당시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[[앙코르]]에는 앙코르와트를 포함하여 [[바이욘]], 앙코르 톰 등 여러 장대한 건축물들을 지어졌으며 돌만 남은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모든 사원들이 황금과 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대단히 아름다웠다.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였던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는 캄보디아 예술과 문학이 꽃 피우면서 엄청난 문화 발전을 이룩했고, 당대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대도시이기도 했다. 앙코르의 전성기 인구는 무려 '''70만 ~ 90만 명'''이었다. 동시대 [[런던]]의 인구는 7만 명이었고, [[로마]]는 3만 명,[* 다만 이 시기의 로마는 옛 전성기 시절인 [[로마 제국]]의 로마가 아니었고, [[교황]]과 귀족들의 갈등, 세속 군주들의 개입 탓에 제대로 된 인구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. 지나치게 심한 정치 갈등과 내전 때문에 정상적인 수준의 인구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쇠퇴하던 최악의 시대였다. 훗날 로마가 [[르네상스]]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인구수는 다시 폭증한다.] [[베이징]]의 인구가 70만 명에서 120만 명 사이였다. [[바그다드]]나 [[콘스탄티노폴리스]]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인구수를 가진 거대 도시였던 것이다. 크메르 제국은 800년대에 건국되어 300년 동안 서서히 성장했고, 1100년대와 1200년대 초반에 걸친 [[수리야바르만 2세]]와 [[자야바르만 7세]]의 치세 아래에서 꽤나 오랜 전성기를 누리며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기도 했다. 하지만 1200년대 후반에 들어 [[원나라]]의 침략을 받고 기세가 한 번 꺾이고야 말았고, 이후 [[수코타이 왕국]]과 [[아유타야 왕국]] 등 외세의 침략, 역병, 내전과 왕실 간 내분으로 끊임없이 무너졌다. 결국 태국계 아유타야 왕국에게 수도 앙코르가 몇 차례 함락되어 약탈당하자, 더이상 견디다 못해 1431년 더 방어가 용이한 [[프놈펜]]으로 천도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.[* 엄밀히 말하면 최후의 국왕 보롬 리치아 2세가 살아남았고, 왕통도 그대로 보존되었기에 제국 자체가 망한 건 아니었다. 하지만 이후의 크메르는 완전 태국과 베트남 등 인근 강국들에게 치이면서 '''암흑 시대'''라고 불릴 정도로 국력이 약화되었다. 때문에 패권국으로서의 크메르 제국은 1431년에 끝났다고 본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